
명절 귀성길, 우리가 모르고 지나쳤던 가격의 비밀
명절 귀성길, 꽉 막힌 고속도로에서 잠시 들른 휴계소. 돈가스 한 접시에 11,000원, 라면 한 그릇에 6,500원. 대부분은 ‘고속도로니까 원래 비싸지’하며 그냥 주문합니다. 허기를 채워야 하고, 다른 선택지가 없으니까요. 하지만 이 가격 안에는 30년 전 누군가가 설계한 구조가 숨겨져 있습니다. 강원도 인재 내린천 휴계소는 국내 최초 상공형 휴계소로 248억 원의 사업비가 투입된 근사한 공간이었습니다. 그러나 2022년, 운영사 스스로 문을 닫겠다고 선언했는데, 5년 누적 적자가 167억에서 194억 원에 달했기 때문입니다. 황금알을 낳는다는 고속도로 휴계소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이는 내린천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코로나 이후 덕평, 행담도, 시흥하늘, 평택복합 등 대형 민자 휴계소들도 심각한 자본 잠식 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민영화의 명분과 현실: 경쟁이 작동하지 않는 포로시장
한국의 고속도로 휴계소는 1971년 경부고속도로 추풍령에 국내 1호 휴계소가 문을 열며 시작됐습니다. 오랫동안 도로공사가 직접 운영하던 휴계소는 1994년 민간자본 유치 촉진법 재정으로 흐름이 바뀌었습니다. 1995년부터 입찰제가 도입되며 민간 기업에 위탁 운영되기 시작했죠. 서비스 개선과 경쟁을 통한 품질 향상이 명분이었습니다. 실제로 초기에는 메뉴 다양화, 시설 개선 등 변화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습니다. 고속도로 휴계소는 경제학에서 말하는 ‘캡티브 마켓(포로 시장)’이었습니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운전자가 배가 고프면 휴계소밖에 선택지가 없습니다. 일반 시장이라면 음식이 비싸면 옆 가게로 갈 수 있지만, 고속도로에서는 불가능하죠. 이처럼 소비자가 사실상 선택지 없이 특정 공급자에게 묶여 있는 구조에서 가격 경쟁은 작동하지 않습니다.

3단계 수수료 구조: 11,000원 중 4,400원은 구조 유지비
고속도로 휴계소의 가격은 도로공사, 운영사, 입점 업체의 3자 구조에서 결정됩니다. 업계 추산으로 도로공사가 매출의 14-16%를 수수료로 가져갑니다. 11,000원 중 약 1,500-1,700원이 도로공사에 지불되는 셈이죠. 운영사의 실제 수익률은 3-4% 수준에 불과합니다. 문제는 이 구조가 2단계가 아니라 3단계라는 점입니다. 도로공사가 운영권을 민간 운영사에 넘기고, 운영사는 다시 휴계소 내 식당, 편의점, 매점에게 공간을 임대합니다. 입점 업체들은 운영사에 추가로 20-50%의 수수료를 내야 합니다. 2025년 11월 대통령실 발표에 따르면 휴계소 운영 업체들이 평균 40%에 달하는 높은 수수료를 수취하고 있습니다. 결국 11,000원 중 4,400원 이상이 여러분의 입에 들어가는 음식이 아니라 이 계약 구조를 유지하는 데 쓰이는 것입니다. 이 구조에서 음식을 직접 만드는 입점 업체에게 남는 것은 얼마 없어, 가격을 올리거나 재료 품질을 낮출 수밖에 없습니다.

30년을 지켜온 이해관계 네트워크: 도성회와 회전문 인사
왜 이 구조는 30년 동안 바뀌지 않았을까요? 국정감사 자료 분석에서 흥미로운 단체가 등장합니다. ‘도성회’라는 한국 도로공사 퇴직자 단체입니다. 이 단체는 1986년 자회사를 설립해 고속도로 휴계소 9곳과 주유소 1곳을 운영하고 있으며, 연간 수억 원의 배당금을 받고 있습니다. 2017년부터 2021년까지 5년간 도성회가 자회사에서 받은 배당 수익은 48억 4천만 원에 달합니다. 또한 2024년 기준 도로공사가 운영권을 임대한 189개 휴계소 중 36%를 상위 5개 기업 집단이 차지하고 있어 시장이 과점 구조로 형성되어 있습니다. 국감 자료와 업계 증언에 따르면 이 과점 구조 뒤에는 도로공사 퇴직자들의 운영 업체 재취업이 반복적으로 지적되어 왔습니다. 언론은 이들을 ‘도피아(도로공사+유토피아)’라고 부르며, 도로공사 퇴직자들이 휴계소 운영 생태계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음을 지적합니다.

변화의 시작: 직영화 확대와 구조 개혁의 가능성
30년 만에 처음으로 변화의 신호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2025년 11월 대통령실이 직접 나서 직영 휴계소를 대폭 확대하고 수수료 40%, 전관예우 관행을 근절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정부는 2026년 상반기 도로공사 산하 휴계소 전문 관리 공기업을 설립할 계획이며, 2026년 신규 개소 5곳을 시작으로 2027년에는 수십 곳까지 직영 체제로 전환할 예정입니다. 직영 휴계소의 효과는 이미 데이터로 확인됩니다. 국회 자료에 따르면 직영 휴계소의 돈가스 평균 가격은 10,800원으로 임대 휴계소(11,200원)보다 3.7% 저렴했습니다. 중간 마진이 없으니 가격이 내려가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하지만 새로운 공기업이 과거 고속도로 관리 공단처럼 도로공사 퇴직자들의 낙하산 인사로 변질되지 않을지에 대한 우려도 있습니다. 포로 시장의 구조 자체가 바뀌지 않으면 운영 주체만 바뀌는 것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30년 전 누군가 설계한 게임판을 이번에 정말 바꿀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할 때입니다.